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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세월호 조사관들, 다시 조사 시작한다 11월 12일 오후 5시, 100만 인파에 힘을 보태기 전 필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세월호 특조위' 사무실을 찾았다. 앞으로 평생 살아가면서 이처럼 중요한 일을 또 하게 될 수 있을까. 요즘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로 보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여망이 또다시 이 공간의 불을 밝히지 않을까 싶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사무실에서 100만 대오가 모이는 장엄함을 한 눈에 내려다보고자 하는 마음일까. 땅거미가 가라앉을 어스름한 초저녁, 그렇게 사무실의 불을 밝혔다. 최근 여러 차례 보도되었듯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을 목적으로 꾸며진 7층의 공간은 주인을 잃은 책상들만 덩그러니 남아 그 처지를 외로이 증명하고 있었다. 사실상 사무처는 파견공무원들의 주도로 9월초부터 정리되.. 2020. 5. 10.
다시 떠오른 '세월호 7시간', 국가 회복의 첫 단추 듣도 보도 못한 최순실의 국정농단 파문으로 연일 혼란이 계속 되고 있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국민들은 지난 한 주 동안 종편들의 '입'을 하루 종일 기다리는 '진귀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대체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가공인지 혼란스럽다. 최순실을 향한 누군가의 복수극일지 모른다는 정보도 넘쳐흐르고 있다. '박근혜 하야', '최태민', '최순실', '고영태', '정유라', '안종범', '정호성', '영세교'라는 단어가 매일 포털사이트 최상위에 배치된 것은 그만큼 국정농단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가 높다는 뜻일 것이다. 동시에 국정농단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키워드가 지난 10월 26일~28일 3일 동안 지속적으로 검색순위 1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세월호.. 2020. 5. 10.
<무도>가 만난 안창호, 우린 그를 너무 모른다 MBC 팀이 8.15광복절 특집을 앞두고 미국의 대한인국민회를 찾았다고 한다. 방영분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지만 대한인국민회의 방문은 자연히 광복절에 맞춰 도산 안창호 선생(아래 안창호)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기획되었을 것이다. 많이들 모르는 사실이지만 미국 리버사이드 시청사 앞 도로에는 동상이 3개가 있는데,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킹 그리고 안창호의 동상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교민들 사이에서 대한인국민회와 안창호의 역사는 그렇게 현재에도 의미가 깊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서는 미주사회와 같은 실제적 위상보다 막연한 '스승'의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치열한 독립운동 선상에서 한 번도 물러나지 않았음에도 김구, 이승만, 여운형, 김규식, .. 2020. 5. 10.
태영호와 지성호의 오버 북한이탈주민 지성호가 처음 목발을 짚고 국민들 앞에 섰을 땐 전두환과도 식사를 하는 김장환 목사와의 관계, 가짜뉴스 출처로 의심되는 에스더기도연합과의 관계를 차치하고서라도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인권과 생활의 개선을 위해 먼저 움직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그대로 우리사회의 진보이자 성장이다. 그런데 '김정은 이상설' 국면에서 출처를 밝힐 수 없는 휴민트 정보를 토대로 김정은 99% 사망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대한민국 정부 외교 안보라인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실망을 넘어 그가 의원을 해도 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오버하지 마라. 북한에서도 최고위 정보를 담당하지도 않던 사람이, 그 가까이도 가보지 못했던 사람이 어느날 느닷없이 북한정권의 탄압의 희생양이라는 명분과 트럼프.. 2020. 5. 10.
3.1운동의 국제적 성격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잠들기 전 잠깐 복기해본다. 자고 일어나면 그냥 세상이 바뀌어 있는게 아니듯 3.1운동의 발생 근원과 파급효과에 대해 주억거려본다. 너무 큰 오류가 있지 않은 이상 가볍게 지나치면 좋을 듯 하다. 3.1운동은 우선 그 기획과 파급효과가 국제적 성격을 가졌다는 점을 먼저 떠올려본다. 비교적 조직적 항일운동이 가능했던 중국에서는 이미 임시정부 설립 이전인 1917년부터 예관 신규식을 중심으로 '민족대단결선언'을 통해 독립운동의 대표적 지도기관을 설립할 것을 주장하여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었다. 망명 정부구성이라는 '큰 일'이 논의되자 명망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상당수가 중국으로 몰려들었고, 1918년 11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되자 망명 .. 2019. 3. 2.
김원봉은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국가보훈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 보훈혁신위'가 의열단 단장을 역임한 김원봉 선생(이하 김원봉)을 독립운동자로 권고하자 자유한국당이 색깔을 앞세워 반대하고 있다. 한국당은 김원봉이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국가검열상에 된 것에 대해 예의 그렇듯 혐오의 표현을 쏟아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1948년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고문을 당해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김원봉이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하더라도, 약간 훗날 박헌영의 남로당계 숙청과 58년 8월 김두봉의 연안계가 숙청되면서 김원봉도 58년 말 모든 정치적 직위를 박탈당하고 최후마저 불투명하다. 또한 6.25전쟁에서 그의 친인척 8명이 김원봉으로 인해 남한에서 총살 또는 살해된 바, 김원봉은 현재 남한 역사에서도 북한 역사에서도반가운 인물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 2019.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