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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30

유영익과 이승만 살리기2 지난 번 '유영익과 이승만'을 다룬 글을 두고, 투박하다는 의견이 있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다. 기실, 그 시기 명백한 친일활동과는 거리가 있던 이승만을 두고 자로 잰 듯 매국의 흐름에 선두에 있었던 것처럼 표현한 부분에 대해 먼저 반성하는 마음을 갖는다. 누구나 그렇듯 어떤 사람의 행위 자체는 행위를 할 그 당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 같다. 해석은 보통 어떤 행위에 대한 동기와 과정, 결과를 통째로 놓고 보는 일이기 때문에 '사후평가'가 되지만, 즉각적 판단이 필요한 당시의 복잡한 환경속에서 내리는 정치인의 행위를 한면으로만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다. 지난 글은 정치서적이 아닌 교과서를 두고 이승만을 과하게 부풀린데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가.. 2013. 10. 18.
유영익과 이승만 살리기1 2008년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앞장선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내정자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이승만 숭배자다. 이번 교학사 교과서를 집필한 이명희 교수가 유영익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역사학자라는 권위가 부여되서 그런지 지난 '뉴라이트 사관'이 등장했던 2008년보다 현재의 여파가 더 깊어보인다. 그때야 경제학자들이 만든 교과서여서 그런지(대안교과서) 어째 잘 쳐주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학계 내부의 역사전쟁이라 그런지 더 치열해보이는 느낌이다.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 이승만에 대한 복권을 시도하는걸까? 그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전문적 수준은 못될지라도 이러저러한 자료를 들춰본 바 있다. 유의미한 텍스트로는 '우남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이한우, 해냄)'과 .. 2013. 10. 18.
함께하는 독서강독회-지배자의 국가 민중의나라2 서중석 교수(성균관대 정년퇴임)의 책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돌베개출판사, 2010)' 를 기본으로 독서강독회 핵심내용 정리! 다음주부터는 서울 성북구에서 벗어나 대학로, 서대문, 여의도 인근에서 진행할 예정이니 거리상 참석이 어려우셨던 분들은 과감히 함께해요~! 챕터2. 독립운동과 새나라 구상 1. 독립운동을 타국영토에서 전개한다는 것은 특수한 경우에 속함. 타국 한 지역에서만 집중한 것도 아니고 국가와 사회체제가 달리하는데도 폭 넓게 전개됨. 다만 아쉬운 것은 여러곳으로 분산되어 전개된 독립운동은 상호 연락을 취하기도 했지만 독자적으로 전개한 경우가 훨씬 많음. 만주, 러시아, 미국 등에서 분산 전개된 운동은 성과 못지 않게 해방 후 정치세력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해악도 발생했음. 2. 독립운.. 2013. 8. 20.
현충일을 맞이하여. 현충일을 맞아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의 마음에 더해 생각나는 한가지. 내가 갖고 있는 책 중 구하기로 따지면 손가락 안에 들만큼 어려웠던 '압록강변의 겨울'이라는 책이 있다.한겨레신문사 기자를 역임한 이태호씨가 신경완 전 북한 조국통일민주전선 부국장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기록으로서 부제는 '납북요인들의 삶과 통일의 한'이다. 6.25당시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해 심혈을 기울였던 정치작업인 이른바 '모시기공작'은 주로 반이승만 노선에 섰던 주요인사들을 납북시켜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김일성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시기 대상들에 대한 엄격한 분석이 필요했고 김일성의 특별지시를 받는 방학세(김일성의 심복으로 훗날 박헌영을 권총으로 살해한 인물)는 서울프락치들의 정.. 2013. 6. 11.
선조와 이승만 임진왜란 때 한장면을 보며 떠오른 생각.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 선봉대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결국 궁궐까지 버리고 요동망명을 계획했던 선조는 압록강에서 적의 추격로를 끊기 위해 남아있는 배들을 불살라버렸다. 이 사이 놀랍게도 남아있는 백성들은 비어버린 궁궐을 불태워 집권자들의 비겁함을 성토했다.(정말 놀랍지 않은가!) 조선 수군의 활약으로 전세가 뒵집히자 염치불구 돌아온 선조는, 조선에 남아 전국을 돌며 사실상의 전쟁지도부 역할을 한 광해군을 괴롭힌다. 비슷한 장면은 1950년대에 반복되는데... 이승만은 인민군에 의한 서울 함락이 예상되자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자신은 끝까지 수도 서울을 사수할 것"이란 담화를 남기자 마자 대전으로 피난가는데 여기서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 다시 나타난다. 바.. 2013. 5. 28.
1961년 5월 16일의 교훈 1961년 5월 16일의 교훈 52년 전 바로 오늘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 쿠데타인 것은 이미 역사적 평가로 규정되었기에 그에 대해선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겠다. 그보다는 이 쿠데타에 대응하는 민주진영의 '어리석음'은 평가해볼 문제기에 길지만 적어본다. 적어도 2회 이상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도 당시 대통령 윤보선은 이를 왜 방치하고서도 모자라 쿠데타군이 '작업'을 시도했을때, 쿠데타를 진압하려던 이한림 1군 사령관에게 친서를 보내 이를 저지한 것일까. 그것은 민주당 내부의 분열상 때문이었다. 1960년 4.19의 혁명적 열기를 구체적인 성과로 가져간 것은 누구보다 민주당이었다. (이 내용은 2008년 촛불시위 이후 2010지방선거에서 명백히 재현된다)자유당의 철저한 몰락 속에 .. 2013. 5. 20.